들어가며
사례기반 심리학 책은 주로 외국 서적들이 많다. 책의 사례들은 작가가 상담자로 활동한 문화와 사회, 가치 등을 반영한다. 사례가 생성된 문화와 독자의 문화적 배경이 다르면, 독자가 사례의 맥락을 완전히 이해하거나 공감하기 어렵다. 물론 번역 과정에서 한국의 문화에 맞게 표현이 가미되기도 하지만 특정 개념이나 표현이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번역될 때, 미묘한 의미나 감정이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을 수 있다. 번역되는 순간에 이미 주관적인 생각이 첨가되는 것이다. 독자가 개인적으로 경험하지 않는 상황이나 감정에 대해 읽을 때, 그 사례들이 직접적으로 와닿지 않을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 가치, 신념과 관련된 내용에 더 깊게 공감한다.
그렇다면 왜 한국의 사례기반 심리학 책은 많지 않을까. 마음의 병은 병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개인적인 성향도 있지만, 문화적 배경이 크다고 생각한다. 예로부터 한국은 사람들이 모여 농사를 짓고, 조화와 일치를 중시하며 집단주의적 문화가 발달해왔다. 집단주의적 문화의 맥락에서 보면 개인적인 문제나 고민을 외부에 드러내는 것이 타인에 부담을 주거나 집단의 조화를 해칠 수 있다고 여겨질 수 있다. 내담자들이 스스로의 고민에 대해 정면으로 마주하기 어려워하고 외부에 공개하고 나누는 것을 꺼리게 된다. 또한 심리학적으로 도움을 구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아직 긍정적이지 않아 내담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거나 사례로 기록되는 것을 주저하게 만든다.
감상
김혜남 작가의 『생각이 너무 많은 어른들을 위한 심리학』은 과도한 생각과 걱정으로 인해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대인들을 위한 책이다. 작가의 임상 경험과 정신분석 전문가로서의 식견을 바탕으로, 많은 생각에 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습관을 인식하고 이를 조절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책은 실용적인 조언과 연습법, 실제 사례 연구를 통해 개인의 심리적 성장을 돕고, 사회적 관계와 일상 생활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복잡한 심리학 용어들을 사용하지 않고 독자에게 친근한 언어로 풀어내며, 독자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생각 패턴을 관찰하고 변화시킬 수 있도록 한다. 책에서는 다양한 경우에 따른 사례를 다루고 있지만, 이번에는 '관계'에 대한 이해와 개선을 위한 작가의 조언을 다룬다.
관계는 다양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질 수 있다. 책에서는 가족과 연인 관계에서 마주할 수 있는 갈등과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원칙도 제시하고 있다.
1. 소통
모든 갈등은 소통하지 않는 것에서 기인한다. 갈등 해결의 첫걸음은 개방적이고 정직한 대화를 통해 서로의 입장과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비난이 아닌 이해를 목표로 해야 한다. 상대방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그들의 감정과 입장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경청은 상대방에게 존중을 표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데 있어 중요한 기반을 마련한다.
대화를 나누지 않으면 자연스레 오해가 쌓이게 된다.
오해를 하게 되면 상대를 원망하게 되고 '나'만 노력하고 있으며,
'나'만 희생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것은 착각일 뿐이다. 표현하지 않는데 누가 그걸 알겠는가.
그러니 상대에게 헛된 기대를 품었다가 실망하고 상대를 미워하기를 반복하는 대신,
상대에게 원하는 것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더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상처 입을지라도 나를 열어 보일 수 있어야 한다.
2. 감정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표현한다. 이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할 수 있고 상대방에게도 정확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화나 실망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효과적으로 조절하며, 감정적인 상태에 있을 때에는 함부로 결정을 하지 않도록 주의한다. 이는 감정이 상승(escalation)되는 것을 방지하고, 건설적인 대화를 가능하게 한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하기는 쉽다.
하지만 그 평가는 오직 내 기준에 따른 것일 뿐이며 나 역시 완벽한 사람은 아니다.
그러므로 겸손해야 하며 상대방을 존중해야 한다.
상대방은 이미 마음속에 답을 가지고 있고,
지금 그 답을 스스로 찾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3. 경계 설정
각자의 필요와 한계를 명확히 하는 건강한 경계를 설정하는 것이 관계에서의 갈등을 예방하고 해결하는 데 중요하다. 이러한 경계 설정의 필요성은 연구 사례를 통해서도 설명하고 있으며, 자아의 경계가 약한 사람들은 상대가 경계를 무너뜨리고 자신을 깊숙히 침범해 들어오는 것을 두려워한다.
한계를 설정하는 것은 내 처지와 능력이 여기까지밖에 안 된다고 상대방에게 명확하게 밝히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한계를 설정하고 거기까지는 최선을 다해 배려하되 그 이상은 못 하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가까워진다는 것은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상대가 나와 다른 사람임을 인정하고, 그의 감정과 생각과 생활 방식 모두를 존중하는 과정이다.
마치며
이 책은 처음엔 30~40대의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쓰여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을 법한 보편적인 주제들을 담고 있다. 특히 자신을 탐색하고,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설계해 나가야 하는 20대에게 이 책은 자신의 정체성을 보다 명확히 하고, 삶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이 책의 본문을 통해 인용된 수많은 구절들이 있지만, 사실 이 책의 모든 구절에 줄을 그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주제 중에서 관계에 대해서만 다루었지만 정신분석, 자기 돌봄, 인간관계 개선, 스트레스 관리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읽고 나서 당연하게 보이는 이야기들, 하지만 일상에서 자주 잊어버리는 소중한 것들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이 책의 매력은 우리가 잊고 지냈던 당연한 것들을 다시 떠올리게 하며, 소중한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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